협력자

나 피아는 개다. 테니스공을 따라다니는, 인간의 좋은 친구다. 내가 개인 걸 내가 선택할 순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 내가 고를 수 없는 것이 나를 규정하는 특징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사랑한다.

인간들. 우린 오래 함께했다. 우리의 관계를 두고 여러 이론이 있다. 그 이론 중 무엇이 진실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세대를 거치며 우리가 함께하고 있단 사실은 확실한 유산(遺産)으로 남았지. 귀한 경험이며, 짜릿한 기억이다. 떠올려보라. 흙내 가득한 들판에 오래 된 당신과 오래 된 내가 서 있다. 두 발과 네 발의 차이도 유대감을 가릴 만큼 멀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볼 줄 알고, 같은 방향으로 달려갈 줄 알았다. 오래된 당신이 나뭇가지를 던지면 오래된 내가 주워 오리라. 내 보드라운 털을 당신이 헝클고, 나는 침 많은 혀로 당신의 손을 핥았겠지.

개는 인간처럼 탁월한 인지능력이나 자기표현 능력을 갖추진 못한다. 똑똑한 버트런드 러셀이 말씀하시길 개가 짖을 수는 있어도 제 부모가 가난하지만 정직했다고 말할 순 없댔다. 하지만 그게 개와 인간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연결을 끊지는 못한다. 인간은 사랑을 갈구하며 우리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게 늑대와 우리를 갈라놓은 특징이다. 늑대는 멋지지만,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엔 맞지 않았다. 지구에서 늑대는 보호구역 내에 살게 됐다. 개는 집집마다 자리를 잡았다. 지구에선 그랬다. 듀랑고는 어떨까?

듀랑고는 인간에게만 낯선 곳이 아니다. 나와 내 동포들, 식육목 갯과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작은 섬과 넓은 바다, 작은 워프, 큰 워프, 사라졌으면 하는 생물과 사라졌다고 생각한 생물로 이뤄진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다. 여러분도 당혹스럽겠지만, 이런 상황엔 개라고 특별히 더 자신이 있는 건 아니다. 발달한 후각과 날카로운 이빨, 튼튼한 네 다리는 지구의 환경을 기본값으로 여기고 진화의 여행 가방에 꾸려온 것이지 듀랑고에 맞춰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린 각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단점을 고쳐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구에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내가 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건 좀 의외일 수도 있겠다.

나 피아는 듀랑고에서 태어났다. 나의 형제들은 눈 못 뜨던 시절엔 서로 솜뭉치처럼 뭉쳐서 지냈다. 세상은 암흑으로 가득했지만 따스한 온기는 털뭉치 멍뭉이들을 감쌌다. 우린 칭얼거렸고 연약했지만, 우리의 피와 살은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부풀어 올랐다. 희미하게 눈이 트였다. 바깥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은 경계가 불분명했고 원색이 덩어리를 이뤄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해와 달은 구체적인 존재보다는 기호에 가까웠다. 별은 빛나는 바위였고, 땅은 발바닥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시간이 흘렀다. 개의 시간은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는 달랐다. 개의 삶은 인간의 것보다 짧았지만, 그렇다고 상대적인 길이까지 짧지는 않았다. 나의 유년은 새로운 배움과 물려받은 본능이 섞이며 독특하고 고유한 영역을 갖춘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자랐다. 다리가 길어지고, 근육이 발달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를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비 내리기 전의 흙냄새, 파도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 한철에 들판에 가득 피는 꽃내음이 코끝을 지나갔다. 하지만 다른 냄새를 압도하는 냄새가 기억을 후려쳤다. 낯설고 거대한 동물이 이 땅에 살았다.

인간은 두 발로 걸어서 세상이 얼마나 높고 거대한지 모른다. 걷는 데 쓰는 발의 숫자는 뱀부터 이름 모를 지네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지만, 규모가 있는 동물들 사이에선 네 발이 표준이었다. 네 발은 척추에 중력이 가할 부담을 줄이고, 같은 거리를 더 빠르게 뛸 수 있게 하고, 대신 에너지 소모가 커서 오래 뛰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의 눈높이는 네 발을 따른다.

그래서 처음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봤을 때 인간이 보는 것의 몇 배로 커 보였다. 그 짐승의 커다란 발은 땅에 압력을 가해 새로운 지층을 만들려고 했다. 그 몸집은 척추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짐승은 그 순간 죽어 쓰러질 동물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 허리뼈를 감싸던 근육이 노쇠해 힘이 풀리고, 장기가 기능을 못 해 몸이 무너져 가고, 곳곳의 구멍으로 흐르던 숨이 꺼지는 순간은 분명히 오겠지만, 그런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찾아올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짐승은 명백히 살아 있었고, 야생의 땅을 그 거대함으로 짓눌렀다. 그 무게가 가하는 진동이 내 몸과 공명(共鳴)하자 삶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겁을 먹고 고개를 돌리면 전혀 다른 녀석이 나타났다. 타르보사우루스의 이빨은 오로지 찢고 뜯고 물기 위해 존재했다. 송곳니와 송곳니가 맞물리는 곳에 사랑과 평화는 요원했다. 남들의 앞발보다 훨씬 쓸모가 적어 보이는 앞발을 달고도 그 짐승은 무언가 죽이는 일을 해내는 데 재주가 탁월했다. 튼튼한 뒷발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가는 운임을 냈고, 이빨은 이빨이 닿는 짐승의 살갗을 찢어 버렸다. 그 날카롭고 냉정한 눈동자를 처음 마주쳤을 때, 육식동물도 다른 육식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단 걸 새삼 깨달아야만 했다. 저주파가 잔뜩 섞인 짐승의 울음소리는 다른 짐승의 오금을 붙들 힘이 있었다. 개의 이빨이 아무리 날카롭고 튼튼해도, 타르보사우루스의 이빨만 할까? 개의 몸이 튼튼해도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육중함만 할까?

K는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내게 차분하라고 속삭였다. 우리의 의사소통이 완벽히 통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듣기엔 그런 느낌이었다. K는 몸이 털로 뒤덮이지도 않았고, 나보다 빨리 달릴 수 있지도 않았고, 이빨이 날카롭지도 않았지만, 나를 휘어잡을 힘이 있었다. K는 육식공룡이 포효하면서 달려오는데도 주눅 들지 않고 움직였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을 보더라도 쫄지 않고 자신이 살아남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를 빠르게 분석했다.

명철하신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씀하시길 아는 게 힘이시다. 다른 인간도 이런 능력이 있겠지만 K는 유별났다. 체격과 폭력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인 존재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 남은 걸음 수를 세면서, 나무에 올라가는 게 안전할지, 파둔 구덩이까지 유도하는 게 안전할지를 판단하는 건 보통 담으로는 불가능했다. K의 이성은 공포가 가진 장점을 극대한으로 이용했다. 적절한 공포는 사고의 결재선을 줄였고, 짧은 시간에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내 머리는 그저 외부에서 자극을 받는 대로 흥분해서 짖어댔지만, K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착하지?”

타르보사우루스의 의식은 흥분과 기쁨에 도취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지끈.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타르보사우루스가 구덩이에 빠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주변의 땅이 흔들리고 울음소리에 나뭇잎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구덩이의 구조는 빠진 대상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게 잘 모양을 갖췄다. 빠진 대상은 몇 시간은 마음대로 돌아다니진 못할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덩이에 빠진 녀석을 보러 갔다. 그 눈동자는 오랜 진화의 여행 동안 어떻게 상대에게 압도적인 공포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이른 형태였다. 그런 눈동자조차 자신이 예상하지 못 한 일엔 내부적인 공포에 잠겼다. K는 창으로 녀석을 찌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K가 그 순간 해야 할 다른 일이 많았고, 그 타르보사우루스를 잡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했으니까. K는 나를 휘파람으로 불렀고, 나는 내가 갈 길로 뛰어갔다.

우린 거대한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은 지구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 지구의 생물이 듀랑고로 넘어왔을 때도 유지된 게임이었다. 게임의 이름은 생존이었다. 이 게임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게임의 주된 핵심 플레이가 유전자만을 남기는 게 아니란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생존시키려고 했다. 생각은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진 않았지만, 그게 열등함을 뜻하진 않았다.

나 같은 개가 세상의 변화무쌍함에 그다지 빠르게 대처하고 있지 못함에도 살아남는 것 역시도, 개가 살아남기를 원하는 생각이 살아남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유전자를 남기는 것 이상으로 생각의 생존을 원했다. K가 남기길 원했던 생각은 그랬다. 서로를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질서가 살아남기를 원했다. 고결하단 개념은 모두에게 상대적이겠지만, 난 K의 생각에 고결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K의 생각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했다. 단순히 K의 고결함을 K가 타고났단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K도 그런 식의 설명은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생각의 진화를 만들어내는 선택압을 생각해봤다.

이 게임은 지속해서 참여자가 처한 환경을 바꿨다. 환경의 변화는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판단력을 참여자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다. 다양한 게임 이론이 성립할 만했다.

듀랑고의 섬은 워프로 인해 끊임없이 바뀌었다. 인간은 워프 못지않게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었다. 인간의 생각은 현실의 환경을 바꿀 힘이 있었다. 워프가 듀랑고의 자연이 겪은 첫 번째 이상현상이라면, 인간의 생각하고 생각을 퍼뜨리는 능력은 두 번째 이상현상이었다. 지구에서 듀랑고로 향하는 워프 현장에서 인간은 최초로 서식했다. 그 후에 다른 동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섬과 섬으로 퍼졌다. 익룡이나 조류, 물에 빠져 통나무에 기어오른 페나코두스 같이 섬과 섬을 오갈 수 있는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은 유별났다. 환경의 변화는 섬과 섬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불안정섬의 독특한 생태를 빠르게 이해했다. 자발적으로 캠프를 짓기 시작했다. 캠프는 특정한 주인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었다. 공유지의 비극을 재현할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곧 사라질 불안정섬에 자원을 투자하면 손해 같았다. 그러나 이런 캠프는 적어도 두 가지를 생존시키는 데 유리했다. 많은 사람이 첫 번째에 주목했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는 두 번째에 더 주목한다.

첫째, 캠프는 인간 개개인이 기반 없는 불안정섬에 왔을 때보다 장기적으로 생존할 확률을 높였다. 캠프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자원을 투자한 개척자는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다른 섬에서 투자하지 않은 캠프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한 닢까지 회계를 따지는 개척자라면, 손해를 보는 개척자가 없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인간 전체로 보자면 확실히 이득을 보고 있었다. 캠프로 인간의 사망률을 체계적인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이는 유전자를 향한 선택압에 대응했다.

둘째는 생각의 생존이었다. 인간은 캠프를 짓고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문화적 관습을 생존시켰다. 인간은 이 생각을 생존시키고자 캠프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캠프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로 이 생각이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캠프를 건설하고 알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야생과 폭력에 익숙해진 인간이 덜 폭력적이고 상호협력적인 사고를 하도록 압박했다. 생각은 살아남아서 인간이 생각하는 환경을 바꿨고, 그 자체로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내가 침을 질질 흘리거나, 뛰어난 후각과 날카로운 이빨을 갖는 것이 나의 지성이 필요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압에 따른 결과인 것처럼, K 같은 인간의 고결한 생각 역시 선택압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아직 이 야생의 땅에서 K 같은 생각이 주류는 아닐 것이다.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세상에서 K의 생각은 돌연변이이다. 돌연변이는 오랜 여행에서 다른 것들보다 도드라져 보이고,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우린 모두 돌연변이의 후예이다.

돌연변이 생각이 세상의 변화에 더 적합하다면, 돌연변이 생각은 점점 이 게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널리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퍼져서 보편적인 생각이 될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증오와 악의로 점철된 생각은 생존에 부적합한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은 게임에서 패배하여 악습이란 화석으로만 남거나 아니면 다른 선택압을 거쳐 변화를 거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게 된다. 당장은 K의 생각이 조롱에 직면하고, 순진한 것으로 취급받겠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나는 여러 증거를 봤다. 앞으로 생각의 변화를 이끌 선택압이 될 여러 현상을 봤다. 마을섬과 도시섬에서 사유지를 취급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한 걸 엿봤다. 처음 듀랑고에 온 인간들은 사유지란 개념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혈 충돌과 집단 갈등을 겪은 끝에 생각은 선택압을 겪었고, 공식적인 정부나 법 없이도 사유지를 인정하는 생각을 발생시켰고 대부분은 그 생각을 받아들였다. 개척자는 일정한 크기의 땅에 일정한 티스톤을 걸어뒀다. 그러면 토지를 향한 배타적인 권한을 인정받았다. 이런 일은 제복 입은 경찰과 군인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듀랑고에선 그런 인간 없이도 해냈다. 생각이 해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K의 고결함과 우리의 이 위대한 동행을. K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많은 조난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는 것을 봤다. 그들은 그 순간 자기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만을 살린 것이 아니다. 구조의 경험을 거치면서, 그들 중 일부는 앞으로 타인을 구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살아남는 과정이었다. K는 묵묵히 견디고 인내하며 자기 생각을 퍼뜨리고, 그 생각이 앞으로 세상의 변화에서 살아남는 데 더 뛰어나단 걸 입증하고자 했다.

나 역시 한 마리의 개로써, 한 명의 협력자로서 참여했다. 나는 나의 활동으로 인간을 돕고, 인간의 개를 향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강화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나의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인간과 개의 협력이란 생각이 살아남는 선까지 갈 것이다. 나는 내가 개라는 게 자랑스럽고, 내가 K와 함께한다는 게 아주 자랑스럽다. 사악한 무법자도, 티라노사우루스의 분노도, 냉소와 질시도 우리를 가르지는 못한다. 우린 시련을 견디고, 더 나은 생각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개와 인간에게 축복이 있으라. 나 피아는 듀랑고의 이 위대한 동행을 믿는다. 오늘도 나 피아는 K를 따라 조난자를 찾고, 조난자의 뺨을 핥아 깨울 것이다.

이상 찰리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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