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자들

 

무전기 여러 대가 동시에 잡음을 쏟아냈다. 많이 겪은 일이었지만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근처에 큰 워프가 일어났으며, 그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조난자가 있을 거란 의미였다. 가끔은 꿈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다.

무전기 각각은 오차가 크지만 모아 놓은 여러 대의 무전기는 지진계와 비슷하다. 무전기에서 나오는 커다란 잡음은 지진계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자세한 그래프를 그렸다. 거기선 기계가 할 일을 여기선 감각이 맡았다.

K와 내가 탄 뗏목은 점점 먼 바다의 거친 물살을 넘어 잔물결이 이는 해안으로 접어들었다. 임무 직전엔 늘 긴장이 됐다. 사실 난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K의 얼굴이 굳었다. 뗏목에 태운 오토바이 시동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긴장을 풀려고 얘기를 꺼냈다.

“이 무전기들 말이야. 잡음으로 워프를 잡아내는 게 지진계 같지 않아? 워프 지진계. 워프계.”

K가 빌려준 과학책 얘기를 써먹었다. 우리는 지구를 책으로 배웠다. 그 책들은 우리처럼 지구에서 왔다. 하지만 나나 K나 지구에 대해 기억나는 건 없었다. 내 말에 K는 고개를 저었다. K는 내가 뭔가를 얘기하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봤다. 왜냐면 당신께선 당신이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찰리. 지진계는 예측하지 못해. 이미 일어난 걸 잡는 거지.”

“응. 그러니까 무전기도 이미 일어난 워프를 잡는 거 아냐? 지진계처럼?”

K가 잠시 생각했다.

“찰리. 그건 워프의 발생 시점을 언제로 잡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난 워프 에너지가 팽창했다가 줄어드는 순간을 발생 시점이라고 하고 싶어. 그 기준으로 보면 아직 워프가 끝난 게 아니라 일어나는 중인 거지. 그렇게 따지면 이 무전기는 워프를 예측하고 있는 거고. 네가 말한 지진계 비유가 딱 맞는 건 아니지.”

횡설수설했다.

피아는 해변이 가까운 걸 보자 물로 뛰어들었다. 피아는 K가 데리고 다니는 포인터 품종의 개였다. 피아는 맨날 저랬다. 절대로 배가 언젠가 해변에 닿는단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구할 만큼 똑똑하지만 어떤 면에선 어수룩한 게, K 같았다.

“아냐. 아냐. K. 찰리 말이 맞는데, 처음에 우긴 걸 무르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내 말에 K가 갑자기 정색했다. 화제를 돌리려는 게 분명했다.

“그 얘긴 됐고. 임무에 집중하자. 앵무새도 찾으러 가야지. 걘 맨날 먼저 날아가더라.”

지진계를 본 적도 없는 사람 둘이 지구에 있을 지진계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는 게 이상할까? 하지만 지구 사람도 지진계를 본 사람은 얼마 없을 거다. 듀랑고의 개척자들처럼 말이다. 우린 늘 지구에서 발견된 것, 만들어진 것, 태어난 사람들 얘기를 했다. 듀랑고에서 지구란 건, 오래전에 가 본 여행지와 비슷하다. 그곳에 대해 아는 건 얼마 없지만, 평생 그곳 얘기를 하고 산다.

난 낙관주의자 찰리. 늘 사람들에게 말한다. 미소를 보여달라고. 사람들은 내가 워프를 당했을 때 뇌의 일부가 워프의 시공 너머로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미래를 걱정하거나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다들 날 배려하는지 내 앞에선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K가 내 옆에서 늘 남은 총알 숫자를 세고 있던 것과는 무관할 것이다.

우리는 섬에 상륙했다. 앙코라 섬이었다.

내가 기르는 앵무새 랑고가 기차표를 물고 왔다. 상으로 애벌레 하나를 랑고 부리에 물려 주었다. K가 수첩을 꺼냈다. 수첩엔 목탄으로 그린 해도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섬마다 메모가 달렸다. 우린 모래 위에 걸터앉아서 잠시 브리핑을 했다. 피아와 랑고도 집중했다.

“예전에 개척자들이 이 섬 얘기하는 무전 들은 적 있어. 워프홀도 크레이터도 없어서 척박하다고 들었어. 북쪽 말고 배가 드나들 곳도 없고. 조난자들이 여기에 떨어지면 오래는 못 살 거야.”

K가 해변에서 내륙 쪽을 보며 말했다. 고가도로가 있었다. 워프로 지구 어딘가에서 듀랑고로 날아온 것이었다.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왔잖아.”

고가도로는 허리가 부러졌다. 콘크리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무너져 있었다. 이미 부식된 지 수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조난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해안에 흩어져 있었다. K는 설명을 길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딱 할 말만 했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더라도, 할 말만 해야 사람들이 구조자의 지시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 경험으로 알았다. 우린 이런 일을 정말 많이 했으니까.

K는 회사란 곳에서 일했다. 지구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K가 있는 회사는 이름이 그냥 회사였다. 회사의 직원들은 내가 보기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집착했는데, 그나마 그 사람들이 가치 있게 하는 일은 워프로 떨어진 조난자들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뒤집어진 기차나, 추락한 비행기, 반 토막 난 버스, 공룡들이 침입한 쇼핑센터 같은 곳에서 가야 할 곳을 모른 채 헤매는 조난자들을 구했다.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들에 생존 식량을 한두 개 던져주고, 무전기를 주고 알아서 살라고 보냈다.

K는 그게 불만이었다. 그 사람들은 듀랑고에서 살 준비가 전혀 안 됐으니까. K는 회사에 알리지 않고, 회사에서 비밀 임무를 위해 마련해둔 안전가옥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안전가옥엔 아무나 기웃거릴 수 없었다. 그곳에서 안전하게 사람들이 듀랑고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모두들. 집중해줘요.”

사람들은 K를 보고 모여들었다.

“여러분은 워프를 당해서 듀랑고에 왔어요. 지구론 못 돌아가요.”

그건 사람들에게 종신형이나 사형 선고에 준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K는 그 뒤에 냉혹한 판결문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부정하기도, 울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춤을 추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피아를 쓰다듬기도 하지만, 결국엔 K의 말을 받아들였다. 현실은 글보다 몇만 배는 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들에게 몸을 녹이라고 해줬다. 우리는 늘 좋은 경찰, 나쁜 경찰 방법을 썼다. 우리가 경찰을 만난 적은 없지만, 책에서 배운 대로라면 그랬다. 사람 좋은 내가 좋은 경찰을 맡고, 사람 나쁜 K가 나쁜 경찰을 맡았다. 서로의 성격에 그게 잘 맞았으니까. 정말 잘 맞았다. 마을섬에 가면 우리한테 구조를 받은 사람들이 나뭇잎에 카드를 써서 보냈다. 연말마다 바구니 몇 개에 찼다. 고마워요, 찰리. 저희도 늘 낙관주의를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늘 낙관이 함께 하기를. 이런 식으로 끝나는 카드였다.

“기차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유독 냉정한 사내가 한 명 있었다. 훈련받은 요원 같았다. 하지만 부상이 심해서 잘 걷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와 K가 부축해 끌고 가서 뗏목에 눕혀야 했다.

그사이 다른 조난자들은 자신들이 타고 갈 뗏목을 만들었다. K가 사람들에게 일감을 줬다. 모든 걸 잃은 조난자라고 해도 눈앞에 할 일을 주면 그 순간만큼은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는 경향이 있었다. 가끔 낯선 동물이 다가오면 겁에 질렸지만 말이다.

K가 요원 같은 사내에게 물었다.

“여긴 기차가 안 보이는데? 섬 내륙에 있나요? 생존자가 더 있나요?”

사내는 머리를 쥐어짰다.

“모르겠습니다. 기차 비슷한 걸 봤는데 녹이 너무 많이 슬어서 그 기차일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생존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아까 말씀하신 워프가 일어난 뒤로 너무 흥분해서 상황을 잘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워프란 게 그래요. 처음 겪어 보면 그렇게 싸가지 없는 자식이 없죠.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도 곧 익숙해질 거예요. 오늘은 쉬어요.”

K가 뗏목에서 오토바이를 끌어냈다. K의 오토바이에 조난자들의 눈이 집중됐다. 조난자들은 그걸 보고 나름대로 듀랑고가 어떤 세계일지 상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다른 섬에 가면 병원도 있고, 보험사에서 돈도 받고, 가족들에게 전화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거라고 꿈꿀지도 몰랐다. 나도 한땐 그랬다. 해변에서 주운 카탈로그를 보곤 언젠가 SUV를 타고 다니는 걸 꿈꿨으니까.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었다. 여긴 듀랑고다. 섬 많이 다니면서 정말 많은 개척자를 봤지만, 오토바이는 K만 갖고 있었다. K가 좀 특별하긴 하니까.

K가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몇몇 조난자가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어느새 K를 이 지역 구조 책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아무튼, 우리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되나요? 혹시 우리를 먹잇감으로 아는 놈들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요? 우리끼리 무슨 수로 막아요?”

피아는 먼저 달려갔다. 산책 시간이었다. 어딘가 조난자가 있다면 피아가 그 침 범벅 혀로 얼굴을 발라줄 것이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정신이 확 깨겠지. 그리고 살아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이 미지의 땅에서 일어설 것이었다.

“이 섬엔 그런 놈들이 없으니까 괜찮아요.”

K는 헬멧을 썼다. 그러고는 나를 가리켰다.

“찰리. 근처에 흩어진 조난자분들도 살피고, 너무 놀란 분들은 뗏목 일 시키지 말고 쉬게 해. 다들 긴장을 풀게 해드려. 너 잘 하는 거 있잖아. 스마이일.”

날 놀리다니.

“네네. 선장님.”

헬멧 써서 보이진 않는데 아마 이마에 주름 좀 생겼을 거다.

“찰리. 내가 그렇게 부르지, 아니 됐다. 아무튼, 부탁 좀 해.”

조난자 몇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난 모양이었다. 뭐 이해는 했다. 듀랑고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찾았는데 자기들을 두고 자리를 비우겠다니. 살아남고 싶은 욕구가 계속 저 여자를 붙잡아야 한다고 졸라댈 것이었다.

“빨리 안전가옥인지 거기로 가요. 구조하러 왔다면서요. 여기로 빠져나오지 못 한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었을 거예요. 우린 더 기다릴 수 없어요. 빨리 어디든, 여기만 아니면 좋으니까 어디든 떠나자고요.”

K는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에 가볍게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K는 난관을 즐겼다. 하긴, 위기를 즐기는 인간이 아니면 누가 이런 구조 업무를 계속할 수 있을까?

“글쎄요. 다들 내가 냉정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방침은 이래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데려간다. 여러분 모두 내 뜻을 존중해줘야 해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K의 목소리는 쉽게 묻히지 않는 울림이 있었다.

“전 K예요. 이름 이상하죠? 또 봐요.”

멀리서 피아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섬 안에 살아 있는 조난자가 있다.

구조자들”에 대한 답글 1개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