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랑고의 크리스마스

페나코두스한테 사료를 주는데 부족장이 왔다. 뭔가 시킬 것 같아 예감이 안 좋았다. 다른 일에 바쁜 척 했다. 페나코두스 똥을 치웠다. 지푸라기랑 섞어 비료를 만들 똥이었다. 부족장은 축사 난간에 기대서 잠시 구경을 하다 입을 열었다.

“곧 크리스마스잖아. 뭔가 준비를 해보는 게 어때?”

크리스마스라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게 자신의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부족장에게 거칠게 되물었다.

“네?”

부족장이 말했다.

“부족 사람들이 요새 계속 고생을 많이 했잖아. 그래서 뭔가 부족 차원에서 행사를 열어서 맛있는 것도 먹이고 그럴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곧 크리스마스더라고. 다들 바빠서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고 뭐고 그냥 지나갔을 거야. 트리 세우고, 눈사람 꾸미고 그러면 멋질 것 같아. 다들 좋아할 거야. 한 번 추진해 보자고.”

나는 거칠게 답했다.

“네.”

부족장은 답을 듣더니 갔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사람이라니. 여기는 열대다. 한낮이면 모래가 끓고 새벽이면 더위에 부채질을 하며 자야 하는 섬이다.

우선 열대 지방에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부족 내에서 지구의 열대 지방 출신을 찾았다. 수소문해서 찾았는데 크리스마스 때 늘 혼자 있어서 모르겠단 답을 들었다. 열대 지방에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내는지 문헌 조사를 하기로 했다. 부족에서 보유한 책을 다 뒤졌는데 전화번호부 1부가 전부였다. 문헌 조사는 중단했다.

그 동안 페나코두스 몇 마리가 병에 걸렸다. 축사에서 지내면서 돌봤다. 약재를 섞은 사료를 먹였다. 새끼 페나코두스 털이 지저분해서 빗어 주고 있는데 부족장이 왔다.

“크리스마스 있잖아. 잘 돼 가고 있어?”

다른 일도 많은데 자꾸 보채는 게 짜증나서 퉁명스럽게 답했다.

“네.”

페나코두스가 기운을 회복하자 부족의 다른 친구에게 사육을 맡겼다. 페나코두스 두 마리가 새끼를 배서 마음에 걸렸다.

배를 타고 섬을 돌았다. 익룡들이 뗏목으로 날아와 식량을 훔치려고 한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항해였다. 차가운 툰드라 섬으로 갔다. 눈 덮인 들판에 바이슨이 돌아다녔다. 적당한 나무를 찾으러 섬을 돌아다녔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웠다. 늑대들이 울부짖었다. 이래서 불안정섬은 오고 싶지 않았다. 사냥꾼 무리가 천막과 모닥불을 보고 오더니 합류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자던 중이라 굉장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네.”

사냥꾼들은 번갈아 잤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계속 잡담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들처럼 말이 많은 사람들은 처음 봤다.

“혼자 온 걸 보니 사냥꾼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탐험가도 아닌 것 같은데. 이 섬엔 무슨 일로 왔수?”

사냥꾼 중 으뜸이 물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만한 나무를 찾으러 왔노라고 답했다. 사냥꾼들이 웃었다.

“직장 다니던 시절에 사무실에다 트리를 꾸미고 그랬지. 이제 10년도 더 전의 일이야.”

“풍요롭던 시절이었지. 냉장고에 늘 먹을 게 있었어. 마트에 가면 먹을 게 가득했고. 그땐 창 들고 매머드랑 싸울 줄은 몰랐어. 임원이 될 생각이었는데.”

“창 들고 매머드랑 싸우든, 마우스 들고 스프레드시트랑 싸우든 다 지긋지긋한 일이지.”

다들 지구 추억에 잠겼다.

아침이 되자 사냥꾼들이 절인 고기를 나눠줬다. 사냥꾼들은 매머드를 잡으러 갈 거라고 했다. 한 명이 장소를 알려줬다.

“전에 스밀로돈 가죽을 구하러 갈 때 본 크레이터가 있는데 근처에 나무가 참 예뻐요. 내가 그때 만사에 지칠 때라 참 심성이 메말랐는데 그 나무를 보니까 갑자기, 뭐라 해야 하나, 마음이 탁 풀려 갖고, ‘세상에 나무가 저리 예뻤구나’ 이리 생각이 들어 가지고.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머니가 12월마다 창고에서 창고에서 트리를 꺼냈는데, 어머니가 참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을 거의 못 하셨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가 일을 두 개를 하셨는데-”

그 사냥꾼의 넋두리를 한 시간 정도 들은 다음에 그 크레이터를 찾으러 갔다. 그 사냥꾼이 정말 중요한 정보는 대충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스밀로돈이 살고 있었다.

적당히 작은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눈을 밟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섬뜩했다. 덩치가 큰 스밀로돈이 눈밭 위를 걸어 오고 있었다. 활을 꺼내 겨눴다. 털이 두툼해서 몸통을 잘 맞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다. 스밀로돈은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10분은 넘게 흐른 것 같았다. 근처에 바이슨이 지나가자 스밀로돈이 생각을 바꿨는지 날렵하게 뛰어갔다. 스밀로돈이 눈밭 위로 뛰는 걸 보니 혼자선 도저히 못 당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숨 하나 번 셈이다.

나무를 밧줄로 묶고 설원을 한참 걸어갔다. 왜 혼자서 이 일을 하려고 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 부족을 떠나야겠다. 전에 다른 부족장이 자기네 목장에서 키우는 콤프소그나투스를 잘 돌봐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살아 있으면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나무를 끌고 가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뗏목에 나무를 묶었다. 간신히 모닥불을 피우고 해변에 누워 있었다. 담요를 5장이나 덮었는데도 찬 바람이 겨드랑이로 들어왔다. 근육통 때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누운 채로 별만 봤다. 밤하늘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감자 몇 개를 모닥불 아래 모래에 묻었다. 시간이 지나니 따끈하게 익었다. 감자에서 단 맛이 났다.

다음 날엔 눈을 모아 눈사람을 몇 개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턱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예쁘긴 한데 얘가 열대섬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었다. 마음의 위안이 필요해서 만든 눈사람 1명을 뗏목에 태웠다.

뗏목_컷만화.png

고물상들이 자주 모이는 기반섬으로 갔다. 듀랑고의 고물상들은 자연엔 극도로 무관심했다. 그들은 잘못 배달된 상자와 무너진 폐허에서 현대 물자를 긁어 모으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별빛이 아름답건, 흐르는 물이 맑건 알 바 아니었다. 고물상들은 다른 고물상이 전화번호부 신판이라도 얻었단 얘기를 들으면 배가 아파 괴로워했다.

그 섬엔 활주로가 있었다. 워프로 날아온 것이었다. 활주로 위에 천막이 여러 채 섰다. 고물상들은 물자를 잔뜩 쌓아 놓고 자기들끼리 매일 경매를 벌였다. 얼핏 보니 싱가포르의 지역 부동산 서류와 전투기의 캐노피를 두고 경매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고물상들은 트리에 장식할 만한 것을 잔뜩 갖고 있었다. 여러 섬에서 주웠다고 했다. 하지만 팔지는 않겠다고 했다. 대신 어디서 주웠는지를 알려줬다.

무너지기 직전인 불안정섬에 갔다. 뗏목을 타고 들어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나오고 있었다. 노를 잡은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저 섬으로 들어가는 거요?”

내가 답했다.

“네.”

뗏목에 탄 사람들이 깔깔댔다.

“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섬의 지반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워프홀들은 이상한 무전을 마구 뱉어냈다. 강물 옆에서 쓰러진 트럭을 찾았다. 트럭엔 어느 선물 회사가 보낸 택배상자가 잔뜩 들었다. 소인 날짜가 대부분 크리스마스 직전에 보낸 것들이었다. 주인을 못 찾아간 상자들에서 트리 장식으로 꾸밀 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별과 솜으로 만든 눈덩이, 막대 모양의 사탕, 전구 등등. 스티로폼도 챙겼다. 눈사람을 만들 만한 소품도 챙겼다.

뒤도 안 돌아보고 짐을 챙겨서 섬을 떠났다. 뗏목이 가라 앉을 것 같았다. 다시 후회가 들었다. 적어도 몇 사람 더 데려와야 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오자 마자 부족장을 만나서 인원 몇 명 붙여 달라고 했다. 나무를 끌고 가서 세우고 장식을 달았다. 누가 석유를 구해서 모터에 부어서 전기를 만들었다. 전구에 불빛이 들어왔다. 사실 이미 12월 26일이었지만 부족원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들 모닥불 옆에 앉아서 옆 사람에게 나뭇잎으로 싼 스테이크를 돌렸다. 줄이 2개 밖에 없는 기타로 연주가 시작되자 다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구석에 앉았다. 부족장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어.”

나는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답했다.

“네.”

글쎄다. 난 결심했다. 이 부족을 나갈 거다. 나를 더 예우해주는 부족으로 갈 것이다. 파티장을 떠나 축사로 갔다. 페나코두스가 새끼를 낳았다. 내가 가자 알아보고 페나코두스들이 소리를 냈다. 새끼들의 건강을 체크했다. 일을 맡긴 친구는 내가 오니 파티장으로 가버렸다. 새끼들을 안았다. 따끈하고 털이 뽀송했다. 열대라도 새끼들은 얼어 죽을 때가 있어서 걱정이 들었다. 창고로 가서 먹이를 챙겨서 구유에다 풀었다. 페나코두스들이 먹었다. 나는 구유 옆에 앉아서 살이 홀쭉 빠진 어미 페나코두스들의 털을 빗었다.

누군가 내 옆에 앉았다. 맥주잔을 들었는데 허브차를 담았다. 맥주잔에 허브차라니, 건전하도록 슬픈 일이다.

“트리랑 눈사람 멋지던데, 다 직접 만든 건가요?”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봤다. 눈동자가 엄청 멋진 사람이었다. 세상에 어떤 시련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견디고 나아갈 거란 무한한 희망을 주는 그런 눈동자였다.

나는 거칠게 답했다.

“네.”

“와. 끝내 주네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대단해요.”

“네.”

“한 잔 따라줄까요?”

“네.”

내가 부족을 나가면 누가 페나코두스를 돌보겠나. 하아.

 

 

듀랑고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답글 1개

  1. 츤츤거리고 또 다시 묵묵히 할거면서 ㅋㅋ
    목동이 기둥도 구하러 다니고 힘든 부족이네요..

  2. 시작부분에 ‘거칠게 되물었다.’랑 ‘거칠게 답했다.’에서 거칠게라는 표현이 중복 되는데, 좋지 않은 인트로인 것 같아요. 작가 분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어휘가 풍부한지와는 별게 없이 짧은 순간에 같은 어휘가 반복되면 독자들은 작가가 어휘가 부족한거 같다는 감상을 가지기 쉽잖아요. 사연이나 소개되는 배경 스토리는 나쁘지 않은데 그 사연을 이끌어가면서 쓰이는 도구가 좀 부실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말 많은 사냥꾼들 부분은 조금 더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 않을까 싶어요. 사냥꾼들은 하는 일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공만한 수각류를 쫓아다니는 게 일이라 그런지 행동이 어린이 축구팀 같다고 한다거나… 이야기 전체의 흐름은 쓸데없는 아이디어로 병사 괴롭히는 보급관 썰, 그러니까 남자들 군대 이야기랑 비슷한데, 인물간의 관계를 그걸 안 따라가다보니까 읽으면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조금 받았어요. 이건 인물간의 관계를 좀더 제대로 제시하거나 혼잣말로라도 표현을 해줬으면 쉽게 해결 될 수 있었던 문제라 조금 아쉬워요.

  3. 그리고 의도하신 바는 어느정도 짐작이 가지만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조금 더 구체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의 사고가 전환되는 부분은 성별이 나와줘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대화 파트가 무슨 영미권 소설 직역해놓은 것 처럼 부자연수러운데, 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람들 많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마지막 대화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라는 대사를 3번 이상 연속으로 반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그 ‘네’를 반복하는 와중에 주인공의 심정묘사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싶어요. 물론 가장 좋은건 ‘네’를 반복시키지 말고 최대한 소설다운 대화를 짜는 거겠지만요.

  4. 그리고 고물상이란 표현은 대체 단어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의 배경이 듀랑고 정착 후 어느 정도 시점을 다루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듀랑고 정착후 2,3 세대쯤 지난 후이고, 고물상이라는 표현은 조금 부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고물상 묘사를 보면 원래 세계에서 온, 일종의 오파츠들을 찾아니는 직업인거 같은데… 하는 일만 보면 고고학자라던가 트레져헌터에 가까운 거 같아요. 물론 적당히 구질구질하고 현실적인 단어를 쓰는 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게임의 배경 스토리이니만큼 조금 과장되더라도 멋진 표현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5. 아 그리고 석유를 구해와 모터에 부었다는 표현 진짜 너무 끔찍해요. 이건 진짜 대안이 필요해요. 단편이니만큼 엄청난 디테일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석유는 좀 아니잖아요. 하다못해 등유라거나, 경유라거나, 원래는 등유를 쓰는 엔진인데 경유를 넣어서 곧 터질 것 같다거나(저는 그렇게 되는 경우 어떻게 될지 몰라서 대충만 예시를 들어봤어요.), 지금 쓰이는 경유로 물레를 돌리면 일손이 수명은 더 남을 거라고 투덜거린다거나. 현대인들과 듀랑고 세계의 사람들이 사고 배경이 얼마나 다른지를 표현할 좋은 도구가 모터와 기름인데 그걸 그냥 쓱 하고 날려버렸어요.

  6. 그래도 지구내 열대지방 출신이라던가 하는 표현으로 오랜 기간 정착한 사람들이랑 비교적 신입이 있다는 듯한 암시를 준건 좋았다고 생각해요

  7. 부족원 등급 권한 조정
    문제 좀 해결해주세요ㅠ
    뭔가 잘못누른건지
    등급 권한 조정 창도 못들어가고
    가입대기자 가입 승인 창도
    안떠서 승인을 못해드리네요
    부족을 처음에 만든 부족장은
    등급별 권한에 상관없이 모든 권한을
    보유할수 있도록 수정해주세요
    1대1 문의도 계속보내는데
    답을 안주시네요ㅠ

  8. ㅋㅋㅋ무척 재밌게 잘 읽었어요 열심히 플레이하면서 이런데가 있는 지 처음 알았네요! 진짜 오래 기다린 게임인데 아직 베타테스트 중인데도 크리스마스 이벤트랑 이것저것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빨리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 다들 수고하세요 화이팅!!

  9. 와 게임성 하나로도 인생겜 만났다고 생각했는데..스토리 중시하는 게이머로써 이런 공식 소설 너무 좋습니다. 글 내용이 너무너무 좋아요. 오늘 처음 잡아본 페나코두스에게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되네요

  10. 직장인의 일상같아서 공감되고 짠하네요 ㅋㅋㅋㅋㅋㅋ이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떠나겠다고 맨날 결심하는 제 모습 같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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